슬픈 역사 속에서 담담하게 그 역사를 품고 버틴

창경궁 


지난 주말 창경궁에 다녀왔습니다. 창경궁은 아주 아름답거나 웅장한 궁궐은 아닙니다. 막상 가보면 정말 횡~합니다. 사실 몇개의 입구와 침전, 정자들이 전부인데요. 아래 사진은 창경궁의 전경도로, 보시면 사실 제대로된 건물은 몇 채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이 오지 않으시면 아래 복원도와 비교해 보세요.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때 2,000칸이 넘는 큰 규모를 자랑하던 창경궁이 왜 지금은 썰렁하고 왜소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걸까요? 창경궁의 변천은 구한말 조선의 슬픈 역사와 함께 합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당시 상왕이었던 태종을 모시기 위해 '수강궁(현재 창경궁)'을 건축합니다. 그리고 1483년 성종은 대왕대비인 정희왕후, 성종의 생모이자 대비인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황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고 '창경궁'으로 궁호를 개명하죠. 

이후 창경궁은 역사의 바람 아래 여러 차례 고난을 당합니다.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복궁과 함께 모두 불타버립니다. 이후 광해군이 재건하였으나, 이후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을 거치며 상당 부분 소실되지요. 정조와 순조 때는 화재로 인해 일부 소실되게 됩니다. 

또한 숙종 때 장희빈이 바로 이 창경궁에서 사약을 받았으며, 영조 때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같혀 요절하는 등 왕궁의 비극과도 함께 하게 됩니다.

결정적인 창경궁의 훼손은 구한 말 순종 즉위 후 일제에 의해 발생합니다.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목하에 일제는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들이고 많은 전각을 훼손하여 일본식 정원으로 꾸밉니다. 한일합병조약이 이루어진 1911년 이후, 창경궁은 결국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격하되어 불리게 되며 일본인들과 백성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됩니다. 백성들에게서 조선의 흔적을 지우는 일 중 하나로 거행된 창경궁의 공원화로 수백년 된 전각들이 허물어지고, 역사의 흔적을 안은 궁궐은 훼손되어갑니다. 대신에 벚꽃과 원숭이, 코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죠. 뿐만 아니라 일제는 종묘와 창경궁을 이어주던 산은 없애고 현재의 율곡로를 건설해 궁궐의 맥을 끊어 놓았습니다.

때로는 무기력한 왕으로 비난 받는 순종.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이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온갖 저항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한 아버지 고종을, 대놓고 일본인에 의해 암살당한 어머니 명성왕후를 보고 자란 순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백성을 위해 궁궐을 개방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귀한 조선 왕실이 일개 공원으로 바뀌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을 순종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벚꽃놀이 온 일본인들을 바라보며 망국의 설움을 온몸으로 느꼈겠죠.


이렇게 조선이라는 나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창경궁도 함께 역사속으로 들어갑니다. 

일제에 의해 점령당한 창경궁


창경원에서 벚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는 독립하지만, 창경원은 원래의 이름을 되찾지 못합니다. 1950년 동란으로 창경원이 폐관되나, 1954년 우리의 손으로 다시 창경원을 개원하고 동물들을 새로 들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을 없애는 것이 아까웠던 걸까요? 아니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걸까요? 그리고는 창경원은 1983년까지 일제 시대와 똑같이 독물원, 식물원, 놀이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죠. 1983년 동물원과 식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인계하고, 1986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창경궁으로서 복원되어 개방됩니다. 1911년부터 1983년까지 72년간 잃어버렸던 이름을, 해방되고 40년이 지나서야 되찾게 된 것입니다.  



창경원에 설치된 케이블카



창경원에서 코끼리를 구경하는 사람들



지난 이야기를 알고 방문한 창경궁은 쓸쓸하고 슬퍼보였습니다. 비록 복원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의 궁궐이었다기에는 너무 적은 건물과 비어있는 공간들. 나무들만이 쓸쓸한 공간을 메꾸고 있었습니다.




명정전의 모습





푸른 하늘 아래 고궁의 모습이 아름답죠.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명정문



함인정이라는 정자. 한때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고 나들이 온 사람들. 보기 좋아요.



통명전. 왕과 왕비의 침전



관천대. 이름과 같이 천체를 관측하는 곳입니다.




+ 이상할 정도로 휘어져 자라나는 나무들

창경궁의 나무들은 궁궐의 고단한 역사를 몸에 품고 자라서인지 대부분 아래처럼 휘어진 모습입니다. 그 휘어진 각도가 매우 커서 받침대 없이 버티고 서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다름이었습니다. 한두 그루도 아니고 많은 수의 나무들이 다 이렇게 휘어 자라는 연유는 무엇때문일까요?


나무가 완전히 대각선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중간에서 기둥이 90도 이상 꺽여서 자라고 있었네요.



입장료는 천원입니다. 24세 이하, 65세 이상이면 무료 입장이구요. 



서울 한 가운데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는 창경궁을 방문해서 그 공간에 담긴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오래된 건축물은 그 모습보다 그것이 겪어온 시간에 그 가치가 더욱 녹아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서울이 품고있는 고궁들이 더 사랑받고 소중이 다루어지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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